“이게 뭐-게?”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글은 대뜸 집게와 엄지로만 집은 뭔가를 벨져를 향해 덜렁덜렁 흔들었다.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집혀있는 건 꽃분홍색이 돋보이는 원피스였다. 딱 봐도 몸에 타이트하게 붙는 재질 같은 것이, 절대로 남성용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글의 손아래에서 흔들리는 것은 괴랄하게 느껴졌다. 벨져는 이죽거리는 이글의 얼굴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 뒤 다시 들여다보던 서류뭉치로 눈을 돌렸다. 대놓고 무시하는 벨져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, 이글이 입을 뗐다. "이걸 보니 뭔가 냄새가 나." "그럼 좀 청결하게 하고 다녀라, 이글." "매일 이딴 이상한 게 매번 형 이름 앞으로 온단 말이지? 지난번엔 망사스타킹, 지지난번엔 웬 제복이 오질 않나. ……뭔가 수상해. 나의 숨겨둘 수 없는 천재적 레이더가 여기엔 뭔가 있다고 속삭이고 있어." "네가 내게 관심이 그렇게 많은지는 몰랐는걸, 이글. 그리고 환청이 들릴 정도라면 술은 작작 처마시고 다니는 게 좋겠구나." 벨져는 영 이글의 말에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. 그가 무어라 떠들든지 제 할 일에나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. 이글은 그 성의 없는 태도에 굴하지 않고 떠보듯 말했다. 한껏 낮춘 목소리는 장난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사뭇 진지했다. "게다가 가장 의심스러운 건 형이란 말이지." 그제야 벨져의 눈이 이글을 향했다. “아니, 그렇잖아? 내가 아는 벨져 홀든은 이런 수치스러움을 겪으면 보낸 사람을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반 죽여 놓을 것 같단 말이지? 근데 이렇게까지 관심도 없고, 방치하고 있다? 이러면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지.” “…….” 이글은 눈동자를 빛냈다. 벨져의 표정은 도대체 어떤 한심한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 하는 한편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. 이글은 입 꼬리를 씨익 끌어올리며 짓궂게 말했다. “혹시 이거, 형이 배달시킨 거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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릭은 벨져에게 인사를 건넬 겨를도 없이 얼굴로 날아오는 옷과 먼저 인사를 나눠야 했다. 내던져진 건 얇은 원피스였지만 얼굴은 뺨을 맞은 듯이 화끈했다. 그는 얼굴에 그 천조가리를 뒤집어 쓴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옷을 끌어내렸다. 벨져는 익숙한 듯 1인용 소파에 앉아 다리까지 꼰 채로 말했다. “이글이 날 의심하더군. 내가 배달시킨 거냐면서.” “뭣…” 릭은 그때까지도 얼굴에 뒤집어 쓴 천조가리를 치우지 않고 있다가 당황스런 얼굴로 벨져를 향해 뒤돌았다. 말도 잇지 못하고 손만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 꽤나 우스운 모양새라 벨져는 픽 웃으면서 쏘아붙였다. “이제 어쩔 테지?” “그, 그… 그건…….” “어떻게 해결할지 생각도 안 해뒀으면서 꽤나 과감한 일을 벌려두었군, 릭.”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릭이 입만 다물고 있자 벨져가 무심하게 덧붙였다. 네가 벌려둔 일이니 네가 처리하지 그래? “네가 입기라도 하면 되겠군.”